시대가 변해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다소 가벼워졌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증가하면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들의 결혼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5살 전후가 되면서 결혼하던 시대도 있었는데, 결혼의 나이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현상이 생겼다. 30살, 35살이 넘어서 결혼을 고민하고, 40살이 훌쩍 넘어도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결혼보다 일을 선택하거나, 결혼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알차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증가했다.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안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던, 하지 않던 관계없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중에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결정하고, 그 방향성 안에서 하루 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다.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며 결혼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죽기 살기로 결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은 자신의 몫일 뿐이다. 한국사회의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2세에 대한 열망으로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도 있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목표인 사람도 있다. 결혼이라는 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선택으로 결정되고, 각자에게 적절한 나이가 있는 것이니까!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결혼은 연애하는 시간을 거쳐 결실을 맺기 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달콤한 연애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마음적 확신이 서야 공표할 수 있는 일이다. 결혼에 대한 선택과 과정은 어떻게 보면 너무 감격스러우면서도 어렵다.
연애에 대한 감정과 고민은 결혼보다 다소 가볍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만남이 시작되고, 만남의 지속성은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으로 발전한다. 연애의 감정은 설래는 감정의 최대치를 느끼게 해주는 과정이다. 설래는 감정은 기쁨이나 행복감을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을 활력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기분이 들뜨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차고, 직장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수시로 콧노래를 부르게 만든다. 이러한 좋은 감정은 연애의 긍정적인 작용이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그 어떤 약도 만들 수 없는 신비로운 효과를 가진 명약이다. 물론 이러한 좋은 연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착이 생기고, 갈등으로 인해 싸움과 화해가 반복되고, 작은 습관의 차이에서도 마찰이 불거지고, 안보면 그립고 만나면 다투기만 하다가 지쳐서 헤어지는 연애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가지고 시간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면에서 연애도 쉽지 않다. 힘든 연애를 반복할수록 천당과 지옥은 사람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명리학적 관점에서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분석될까? 갈등과 고민을 반복하고, 심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사주상담을 활용하고 있다. 좋은 상담을 하게 되면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도 심적 고통을 덜어낼 수 있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 스스로도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전문가가 한번 더 짚어주게 되면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수긍하게 된다. 이런 수긍은 때로는 자신의 평정심을 찾는 것을 넘어 지난날의 자신에 대하여 되돌아보게 한다. 타인의 충고나 교육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자기 스스로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명리학이 가진 훌륭한 강점 중의 하나이다.
“보는 눈이 너무 높아서 만날 사람이 없지!”
“완벽한 사람을 찾으니까 연애하기 어려울거야.”
“외모, 학력, 직업, 집안까지 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너무 까다롭게 사람을 고르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
명리학에서는 결혼의 나이가 한정되지 않는다. 20대나 30대가 적당한 결혼 정년기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개개인에게 주어진 운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결혼 정년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20대, 30대는 마음만 먹으면 연애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창 이성을 사귀고 연애와 결혼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연애가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애타게 연애하고 싶지만 평생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적 없는 사람도 있고, 어쩌다 인연이 되어 연애를 시작했지만 임신이 되어 바로 부모가 된 경우도 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딱히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40대까지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하다 50살이 되어서야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안절부절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우리의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애타게 결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명리학은 말한다. 눈이 높아서 결혼할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니라, 까다롭게 상대방을 고르니 연애할 사람도 결혼할 사람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까칠해서 곁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결혼으로 인해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는 당사자라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에서 뭉클한 위로를 얻는다. 자기 자신이 뭔가 부족해서 결혼을 못한 것이 아니라, 성격이 하도 까다로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음양오행의 흐름과 계절학의 원리에 따라 아직 좋은 시기가 오지 않아서 못한 것뿐이라는 말에서 안심을 찾는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시대가 변해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다소 가벼워졌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증가하면서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해도 직장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들의 결혼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5살 전후가 되면서 결혼하던 시대도 있었는데, 결혼의 나이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현상이 생겼다. 30살, 35살이 넘어서 결혼을 고민하고, 40살이 훌쩍 넘어도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경우를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결혼보다 일을 선택하거나, 결혼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알차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여성들도 증가했다.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안 하는 것이다. 결혼을 하던, 하지 않던 관계없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 중에는 자신이 살아가야 할 방향성을 결정하고, 그 방향성 안에서 하루 생활에 최선을 다하며 인생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다. 시대적 흐름을 역행하며 결혼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죽기 살기로 결혼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다.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은 자신의 몫일 뿐이다. 한국사회의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서 생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2세에 대한 열망으로 결혼을 서두르는 사람도 있고,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 목표인 사람도 있다. 결혼이라는 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상황 속에서, 각자의 선택으로 결정되고, 각자에게 적절한 나이가 있는 것이니까! 결혼을 고민하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결혼은 연애하는 시간을 거쳐 결실을 맺기 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달콤한 연애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는 마음적 확신이 서야 공표할 수 있는 일이다. 결혼에 대한 선택과 과정은 어떻게 보면 너무 감격스러우면서도 어렵다.
연애에 대한 감정과 고민은 결혼보다 다소 가볍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만남이 시작되고, 만남의 지속성은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으로 발전한다. 연애의 감정은 설래는 감정의 최대치를 느끼게 해주는 과정이다. 설래는 감정은 기쁨이나 행복감을 확산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을 활력있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기분이 들뜨고, 얼굴에 웃음이 가득차고, 직장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수시로 콧노래를 부르게 만든다. 이러한 좋은 감정은 연애의 긍정적인 작용이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그 어떤 약도 만들 수 없는 신비로운 효과를 가진 명약이다. 물론 이러한 좋은 연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작은 좋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착이 생기고, 갈등으로 인해 싸움과 화해가 반복되고, 작은 습관의 차이에서도 마찰이 불거지고, 안보면 그립고 만나면 다투기만 하다가 지쳐서 헤어지는 연애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가지고 시간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면에서 연애도 쉽지 않다. 힘든 연애를 반복할수록 천당과 지옥은 사람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명리학적 관점에서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분석될까? 갈등과 고민을 반복하고, 심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사주상담을 활용하고 있다. 좋은 상담을 하게 되면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도 심적 고통을 덜어낼 수 있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데 도움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자기 스스로도 문제점을 알고 있지만 전문가가 한번 더 짚어주게 되면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수긍하게 된다. 이런 수긍은 때로는 자신의 평정심을 찾는 것을 넘어 지난날의 자신에 대하여 되돌아보게 한다. 타인의 충고나 교육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자기 스스로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은 명리학이 가진 훌륭한 강점 중의 하나이다.
“보는 눈이 너무 높아서 만날 사람이 없지!”
“완벽한 사람을 찾으니까 연애하기 어려울거야.”
“외모, 학력, 직업, 집안까지 다 좋은 사람이 어디 있어?”
“너무 까다롭게 사람을 고르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
명리학에서는 결혼의 나이가 한정되지 않는다. 20대나 30대가 적당한 결혼 정년기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개개인에게 주어진 운의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사회적 결혼 정년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다. 20대, 30대는 마음만 먹으면 연애를 바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한창 이성을 사귀고 연애와 결혼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연애가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애타게 연애하고 싶지만 평생동안 단 한번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적 없는 사람도 있고, 어쩌다 인연이 되어 연애를 시작했지만 임신이 되어 바로 부모가 된 경우도 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딱히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40대까지 어영부영 시간을 낭비하다 50살이 되어서야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안절부절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우리의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애타게 결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명리학은 말한다. 눈이 높아서 결혼할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니라, 까다롭게 상대방을 고르니 연애할 사람도 결혼할 사람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격이 까칠해서 곁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결혼으로 인해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는 당사자라면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말에서 뭉클한 위로를 얻는다. 자기 자신이 뭔가 부족해서 결혼을 못한 것이 아니라, 성격이 하도 까다로워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음양오행의 흐름과 계절학의 원리에 따라 아직 좋은 시기가 오지 않아서 못한 것뿐이라는 말에서 안심을 찾는다. 그러니 조금 더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